[독후감] 클릭을 발명한 괴짜들

인터넷 기술이라고 하면 보통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책은 기술 개발 이야기를 넘어 정보를 저장하고 찾는 기술 그리고 정보를 다루는 기계와 인간이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들이 자연스레 인터넷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독후감] 클릭을 발명한 괴짜들

멀티미디어: 바그너에서 가상현실까지⟫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쓰는 독후감입니다. 묘하게도 둘다 컴퓨터 역사를 다루고 있는 절판본입니다.

몇몇 외래어 표기법 특히 외국 사람의 이름은 현재 표기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이 경우 현재의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문득 벽에 꽂힌 ⟪클릭을 발명한 괴짜들⟫이 눈에 들어와서 집어 들었습니다. 부제목은 '인터넷 세상의 문을 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google.com을 입력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의 가장 아래쪽 기술까지 살펴보게 해주는 재미있는 글인데요. 그런데 인터넷을 구성하는 각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뿐만 아니라, 그 기술들을 누가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도 알아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인터넷 기술이라고 하면 보통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책은 기술 개발 이야기를 넘어 정보를 저장하고 찾는 기술 그리고 정보를 다루는 기계와 인간이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들이 자연스레 인터넷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 '버니바 부시'

1941년 미국 대통령 직속 기구인 OSRD(과학연구개발국)의 초대 국장에 취임한 버니바 부시는, 전쟁이 끝나가던 1945년에 6년 간 묵혔던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As We May Think)'라는 글을 공개합니다. 이 글에서 부시는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던 과학이 전쟁 이후 담당할 만한 소재들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사회에 정보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메멕스(Memex)라는 기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메멕스는 사람의 연상 능력을 기계로 옮긴 것이고, 이는 테드 넬슨에 의해 하이퍼텍스트라는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위키백과 메멕스 항목의 소제목 중 하나인 'A proto-hypertext system'은 메멕스와 하이퍼텍스트의 관계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2014년에 두 사람이 메멕스 데모 기계를 만들고, 작동 모습을 영상으로 공개했습니다.

정보화 세대의 태동

부시는 생전에 메멕스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이후 등장할 정보화 세대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칩니다. 노버트 위너(사이버네틱스)나 테드 넬슨(하이퍼텍스트), 릭라이더(인간-컴퓨터 공생), 더글러스 엥겔바트(텍스트 편집 시스템, 마우스) 같은 사람들이 부시와 함께 일하면서 혹은 부시의 글을 읽고 그의 아이디어에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다시 클로드 섀넌(비트)이나 앨런 케이(GUI), 밥 테일러(ARPANET), 스티브잡스(매킨토시), 팀 버너스 리(WWW) 같은 인물에게 영향을 끼치고요.
이들이 2차 대전 시기의 미국 대통령 직속 과학연구개발국(OSRD)부터 MIT나 스탠포드 혹은 제록스의 PARC 연구소와 유럽의 CERN에서 분투하는 모습은, 지금의 개발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엥겔바트는 온라인 공동 편집 시스템을 선보이는 데 성공했지만, 무려 30년이 지나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제대로 활용되기 시작한 건 2010년에 구글 독스가 대중에게 공개된 시점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 영상은 NLS(oN-Line System)라는 시스템을 사용하여 48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동료와 공동으로 문서를 편집하는 엥겔바트의 모습입니다. 마우스라는 도구도 이 행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죠.
1994년 스티븐 레비가 ⟪Insanely Great⟫이라는 책에서 이 행사를 가리켜 모든 시연의 어머니(Mother of all demos)라고 언급한 이후 모두가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 테드 넬슨은 1967년에 재너두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자금이 부족해지고 팀이 해체되는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계속 도전하는 끈기를 보였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합니다.

테드 넬슨은 2007년이 되어서야 재너두 스페이스 1.0을 완성했고, 시연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2010년대에는 재너두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는 OpenXanadu를 공개했습니다. (로딩 시간이 좀 깁니다.)
  • 제록스는 종이 없는 사무실을 꿈꾸며 PARC 연구소에 거금을 들여 GUI와 WISYWIG 기술을 개발했지만, 정작 그 열매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가져갔습니다.
  • 팀 버너스 리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은 CERN의 상급자들을 설득해, 겨우 넥스트 컴퓨터 한 대를 지원받았습니다.

넥스트에서 작동 중인 세계 최초의 웹 브라우저 WorldWideWeb
WorldWideWeb_FSF_GNU

오늘을 살아가는 영웅들

이 책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의 발표 50주년을 기념하여 1995년에 MIT에서 열린 버니바 부시 심포지움을 묘사합니다. 강연자는 더글러스 엥겔바트, 테드 넬슨, 팀 버너스 리, 니콜라스 네그로폰테(MIT 미디어 랩), 앨런 케이, 안드리스 반 담(하이퍼텍스트)이었고요. (강연자 목록과 영상은 엥겔바트의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버니바 부시 심포지움에서 패널 토의 중인 강연자들
vannevar-bush-symposium
이 중 더글러스 엥겔바트, 테드 넬슨, 팀 버너스 리에 대해서는 근황(이 책의 발간년도인 2005년까지 알려진)도 짧게 다루며 책이 끝납니다. 아쉽게도 더글러스 엥겔바트는 2013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부고 기사)

감상

지난 멀티미디어: 바그너에서 가상현실까지의 독후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왜 이런 역사들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는지 안타깝고, 여전히 가르치지 않는 현실도 아쉽습니다. 역사는 그저 영웅담이 아니니까요. 정치가나 군인들이 역사를 통해 상대에게 이기는 법을 배우고, 철학자들이 역사를 통해 새로운 사상을 일구어 냈다면, 기술자들은 역사를 통해 미래의 삶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역사를 다루는 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복간되어도 좋겠네요. 몇 가지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설명(예를 들면 볼마우스 언급 등)을 고치기는 해야겠지만요. 그리고 책이 나올 시점에는 클릭이 독자들에게 쉽게 와닿았겠지만, 요즘처럼 인터넷이 일상화된 시절에 다시 출간된다면 '인터넷을 꿈꾼 사람들' 정도의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